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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립자

    나의 생애
    (왕표순, 1987, 목동은 어디가고)

    청산은 해가 갈수록 점점 더 푸르르며
    한강물 흐를수록 더욱 더 맑아지니
    맡은 일 충성하도록 부지런히 힘써야지.

    많은 욕심 내지 말고 큰 희망 간직하고
    힘쓰면서 노력하여 최후까지 실천하며
    내할일 끝까지 잘 하도록 참으면서 힘써야지.

    뜰안에 대추나무 단감이 열리는 꿈
    이순을 넘고 보니 분수에 맞는 일을
    천천히 더 너그럽게 한가하게 살으리라.

    훈장을 시작한지 한평생 짧은 세월
    어느 것 잘못이며 무엇에 성의 있나
    하나님 보시기에는 별 것들도 아니겠지.

    시조시인이며 교육학 박사인
    설립자 왕표순

    학문에 왕도 없다’라는 교육 신념과 끊임없는 교육 열정으로 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로 구성된
    학교법인 송곡학원을 설립하였다.
    한국 현대시조 등단을 시점으로 4,000여수의 왕성한 작품 활동을 전개하여 제16집에 이르는
    작품집을 창간하였으며 그 외에 漢文·歷史·書道도 지속적으로 연구함으로 탐구하는 사도의 길을 걸었다.
    인생의 목표를 교육 첫발로 시작하여 국가의 교육적 사명을 감당하였으며 대한민국
    교육역사와 숨결을 같이 하면서 일평생 교육의 가치를 창조하였다.
    설립자 왕표순은 올바른 사도의 표본으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으며 지금도
    그의 교육 여정은 빛을 발하고 있다.

    약력

    - 1922년 경기도 양주 출생

    - 동국대학교 대학원 졸업

    -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수료

    - 관동대학교 명예교육학 박사 취득

    - 학교법인 송곡학원 설립

    - 성동상업학교 교장

    - 현대시조 천료등단

    - 현대시조 문학동인회 회장 역임

    - 미국, 남미, 동남아, 구주 등지 교육시찰

    - 태평양 교육자대회 6차 참석

    - 동국대학교 정외과 초대회장

    - 고려대학교 총동우회 감사, 11회 회장 역임

    -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원

    - 1987. 서울사립인문고등학교장회 회장

    - 1970. 1. 31 송곡여자중학교 설립

    - 1972. 11. 29 송곡여자고등학교 설립

    - 1986. 12. 30 송곡고등학교 설립

    - 1997. 9. 2 송곡여자정보산업고등학교 설립

    - 2003. 3. 1 송곡대학 설립

    수상

    - 1990. 5. 20 교육부장관 - 교육가족상 수상

    - 1997. 5. 16 제 16회 한국교육자 대상 수상

    - 1987. 서울사립인문고등학교장회 회장

    - 2005. 12. 12 교육부장관상 수상

    만학도는 교육을 품었다

    어려서 부친에게 한학을 배우다 강습소에서 초등학교 5학년 과정을 마치고 늦게서야
    남양주시 진접면 장현초등학교 6학년에 입학하여 졸업을 한 후 홀로 서울로 올라와 만학의 길에 들어섰다.
    그 당시는 일제 말기로 해방은 하였으나 사회적으로 혼란한 분단기여서 학업의
    길이 쉽지 않았으므로 검정고시를 통해 대학 진학을 도모하였다.
    이어지는 만학도의 길이 삶에 거칠게 다가올수록 교육에 대한 열망이 커져만
    갔고 교육에 대한 사회적 인식 또한 마음 저변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어려움 끝에 1946년 드디어 동국대학교 전문부 문학과에 입학하여 1949년
    졸업을 하고 다시 정치학과 3학년에 편입하였으나 1950년 6.25사변으로
    학업을 일시 중단하게 된다.

    교육의 첫발은 인생 목표의 시작이었다

    1953년 4월 동국대학교 전문부를 졸업하면서 취득한 중등교사 자격증으로 성동중.
    고등학교 교사로 교육의 첫발을 놓았다. 이것은 후에 학교 설립의 꿈을 이루는
    출발점이 되었다.

    1953년 성동중·고등학교에서 7년
    1960년 선린중학교에서 5년

    12년간 국어와 한문을 가르치는 교사로 근무하였다.
    그사이 중단한 학업을 다시 시작하여 1955년 동국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게 된다.
    학업의 시작도 늦고 교단도 32세의 나이로 출발하여 모두 늦었지만 그만큼
    ‘학교 설립을 향한 열정’은 커져만 갔다

    젊은 평교사가 국가의 교육적 사명을 감당했다.

    1953년 휴전 후 사회는 혼란과 의식주 해결이 우선시 되면서 교육은 등한시되었다.
    이때 설립자는 ‘최우선이 교육이라는 신념’으로 휴교 상태의 고등공민학교를 인수하여 문을 열었으나 6개월 동안 학생은 7명 정도였다.
    이후 왕십리에 있는 왕신고등공민학교 인수를 필두로 본격적인 교육사업을 전개하였다.

    1955년 왕신고등공민학교 인수
    1964년 서울경리고등기술학교 인수
    1966년 성동상업전수학교 설립

    특히 성동상업고등학교는 입학시험을 시행해야 할 정도로 학생들이 많았으며 학생 수는 3,600명에 이르렀다.
    분명한 사실은 사변 후 복구 사업에 밀려 미루기만 하던 정부나 사회의 교육적 책임을 ‘한 젊은 평교사가 사명을 감당’했다는 것이다.
    방황하던 수천의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교육의 장과 기회를 제공했다는 것에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반면 교사 확장과 시설 확충으로 인한 밀려드는 경제적 고통은 본인 자산으로 충당하고 그 대가로 가족들이 셋방이나 숙직실 기거 등으로 어려움을
    나누면서 설립자 특유의 인내력과 집념으로 오늘날 송곡은 완성 되어져 갔다.

    대한민국 교육역사와 숨결을 같이 했다.

    1969년 제3공화국은 운명의 건 교육 개혁을 실시하였다.
    초등학생들을 시험에서 해방 시키고자 중학교 무시험 진학과 평준화 작업을 추진한 것이다.
    초등학교 졸업생 전원을 중학교에 배정하게 되니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중학교 부족과 고등학교 부족 사태가 따르게 된다.
    그 당시 학교를 짓고 학급에 70명씩 배정해도 학교 부족 사태는 계속되었다.

    설립자는 허락지 않는 여건 속에서도 ‘국가의 교육 과제’를 같이 해결하고자 학교 확장에 동분서주하였고 그 결과 많은 학생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 주었다.

    1970년 송곡여자중학교 개교
    1973년 송곡여자고등학교 설립
    1980년 송곡여자고등학교 2부 설치

    그러나 증명된 바와 같이 설립자에게는 개교할 수 있는 재력이나 후견인 모두 존재하지 않았다.
    더욱 어려웠던 것은 학교 부지가 군사보호 지역이었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까지의 고충은 형언하기 어렵다.
    오직 자신의 ‘교육철학과 인내심’만이 그 해결점이었다.

    이후 1986년 고교 평준화 정책으로 성동상업학교가 폐교 상태에 이르자 국고보조를 받아야 하는 형편이므로 폐교하자는 주장이 팽배하였으나
    교육 헌신의 집념으로 정규 고등학교 개편을 시도하였다.

    1987년 송곡고등학교 개교

    남들이 손익을 계산할 때 설립자는 오로지 ‘교육으로 국가 발전을 돕겠다’는 의지로 학교 설립을 추구하였다.
    설립자에게 ‘교육 사랑과 나라사랑’은 한 길로 이어져 있었다.

    설립자에게는 또 하나의 꿈이 있었다.
    그것은 송곡학원에 대학을 설립하는 것이다.
    古稀가 되도록 교육과 함께 분투한 삶임에도 ‘우리나라의 살 길은 우수한 인재 확보’라는 굳은 신념 아래 사회에 ‘기능으로 헌신할 수 있는
    전문 기술인 양성’을 위해 전문대학 설립에 도전 하였다.

    교육부의 허가가 쉽지 않았다. 두드리고 또 두드린 결과 대학 설립의 꿈은 현실이 되었다.

    2003년 춘천정보대학 설립
    2005년 송곡대학교로 교명 변경

    끊임없이 탐구하는 사도의 길을 걸었다.
    - 漢學·歷史·書道 연구 및 창작활동

    한학은 조기 입문과 함께 한문교사를 거쳐 지속적인 연구를 통하여
    ‘한학 대가’로서 명성을 익히 얻었으며 역사에도 능하여
    한학과 역사 관련된 저서들을 다수 출간하였다.

    한학 대표작으로는 ‘명심보감’
    -1995. 명심보감
    -1998. 비지 맹자
    -2000. 대학·중용

    역사 대표작으로는 ‘갑신정변 고찰’
    -1961. 갑신정변 고찰
    -1972. 세계 명언집

    이 외에도 중국 고전으로 四書三經 중 최고의 경전이며 가장 난해한 철학으로
    알려진 주역 연구에 입문하여 주역과 윤리·정치를 연계한 人倫 철학을 규명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예로부터 서예는 ‘인간의 심신 수양에 크게 도움이 된다’하여 이를 서도라고 하면서
    중요시 하였다.

    설립자는 서예 보급에 앞장선 수장으로 교직원들에게 서예를 보급하였을 뿐 아니라
    학생들에게는 교육과정에 포함하여 공부를 시켰다.
    나아가 ‘중등 글씨본’을 출간하여 일반인들도 쉽게 서도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안내하였다.

    -1990. 중등 글씨

    시조시인이자 교육학박사는
    저서활동으로 빛을 발했다.

    세계에 자부할 수 있는 문화적 유산 가운데 최고는 전통적 固有詩歌 시조라 할 수 있다.
    시조시인인 설립자는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이라는 명제 아래 시조를 연구하고 작품으로 승화했다.
    한국현대시조에 등단한 후 한국시조시인협회·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현대시조문학동인회에서는
    부회장으로 활동하면서 한시와 현대시조 4,000여수를 창작하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전개하였다.

    1986. 제1집 내 마음 노을되어
    1987. 제2집 목동은 어디가고
    1990. 제3집 초막집 얽고 얽어
    1993. 제4집 일곱빛깔 노을되어

    2002. 제5집 이 강산 무궁화꽃
    2005. 제6집 금강에 살아보자
    2009. 제7집 통일을 기원하며
    2010. 제8집 복음의 빛 비추어라

    하나님과 동행한 사도였으며
    온 가족이 교육을 추구하였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약함도 모욕도 박해도 역경도 달갑게 여깁니다.’
    설립자께서 ‘통일을 기념하며’ 시집에 기록한 신앙고백이다.
    즐거울 때 하나님을 찬양했고 어려울 때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뢰하면서 일생을 하나님과
    동행했다.
    학교 설립을 통한 후학 사랑을 하나님의 사명으로 여기고 이것을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감사의 삶을 살았다.
    그러기에 송곡학원 산하 6개 학교는 모두 기독교 학교로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기독교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가족 또한 모두 그리스도의 신앙을 소유하고 있으며 장남을 중심으로 6남매가 교육에 종사
    하였다.
    1990년 교육부는 설립자의 뜻을 따라 온 가족이 교육가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에 대해
    격려하고자 ‘교육 가족상’을 시상하였다.